자투뭄
나는 무덤 하나를 찾고 있었다
무고한 희생자들의 무덤이 전하는 쓸쓸함 앞에서 작품 구상
나는 "콜드 마운틴의 사랑"을 쓰기 6,7년 전 스모키 산맥의 한 골짜기에 가본 적이 있다.
그곳에는 먼지가 피어오르는 황톳길이 나 있었다. 그 길은 19세기에는 마차들이 오가던 길이었
고, 그보다 더 오래 전에는 인디언들이 이용하던 길이었다. 그리고 그보다도 훨씬 더 오래 전엔
버팔로 들소들이 목초지를 따라 이동하던 길이었다. 나는 공터에 차를 세우고 계곡을 따라 걸어
올라갔다.
청명하고 건조한 10월이었다. 나무 이파리들은 붉게 물들어 가고 있었고 땅위에는 포플러 낙엽
들이 수북이 쌓여 있었다. .
얼마 동안 올라가자 윗면이 넓고 평평한 바위가 경사진 언덕 중간에 튀어 나와 있었다. 그곳에
는 전쟁이 끝난 갈 무렵 테네시 주로부터 산을 넘어와 약탈을 일삼던 북군 습격 부대에게 살해당
한 두 민간인의 시신이 한 구덩이에 묻혀 있었다. 두 사람을 한 구덩이에 무든 것은 아마도 삽질
할 힘을 아끼려고 했기 때문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. 그곳으로부터 몇마일 더 떨어진 스털링
산의 건너편에는 다른 무덤이 있었다.
거기에는 남부 시민자위대에 의해 처형당한 한 바이올린 연주자와 저능아가 함께 묻혀 있었다.
두 사람이 총살당할 때 등지고 섰던 나무는 아직까지도 살아 있을 것이다. 그 수많은 나무들 중
에 어느 것이라고 정확히 말할 수는 없지만. 그 바이올린 주자는 최후의 순간까지도 "보나파르트
의 퇴각"이라는 곡을 연주했다고 한다.
그때만 해도 나는 남북전쟁에 대한 소설을 쓸 생각은 없었다. 물론 나는 "남군의 후예들 "의 일
원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는 충분한 자격을 갖추고 있다. 그러나 나는 전쟁 당시 각 부대의 이동
경로라든지 하늘처럼 추앙받던 장군들의 고매한 성품들이라든지, 또는 비극적인 최후를 맞은 대
통령에 대해서는 별 관심이 없다, 나의 관심을 끈 것은 그 두 무덤이 전하고 있는 쓸쓸함이었다.
두 무덤에 묻힌 사람들은 공존할 수 없는 두 경제 체제가 벌인 전쟁의 무고한 희생자였다. 그
들은 노예제도에 의해 뒷받침된 남부의 농업 중심 경제체제나 북부의 산업 자본주의 경제체제와
는 아무런 상관도 없는 사람들이었다.
수천 년 동안 고수해 온 독립심, 대지의 혼
그들은 아마도 몇 세대 전 쿨로덴 전투이후 미국으로 건너왔던 스코틀랜드 이민자들의 후손일
것이다.
그들 중 노예를 소유한 사람은 5퍼센트도 안 되었고. 대부분 누군가에게 고용되길 거부한 채
스스로의 땅을 일구며 살았다. 그들의 남북의 거대한 두 경제 체제 틈에서 그들만의 전통적인 생
활방식을 지키며 살아가고 있었다. 그들은 거칠고 보수적이었다. 대개 조그만 땅에 농사를 짓거나
가축 떼를 방목하기도 하고 수렵과 열매를 채취해서 삶을 꾸려 나갔다. 그것은 인류가 수천 년
동안 살아왔던 방식이었다. 드넓게 펼쳐진 대지 위에 많지 않은 인구가 흩어져 살기에 어울리는
삶은 극단적인 독립심을 키워준다. 그리고 이 모든 기질들에는 대지의 혼이 깃들어 있다.
그들은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와는 정반대 가치에 의존하며 살았던 사람들이었다. 나는 어렸을
적 그들과 비슷한 사람들을 본 적이 있는데 대부분 나이가 많은 사람들이었다. 지금은 이제 그들
마저 남아 있지 않은 게 현실이다.
이 이야기는 단지 남부에만 관련된 것은 아니다. 우리가 알고 있는 미국의 정신에는 이런 세계
관이 곳곳에 스며 있다. 제임스 페인모어 쿠퍼와 소로우, 휘트먼, 그리고 프로스트의 시에는 곳곳
에 이런 흔적들이 배어있다. 그리고 또한 현대의 우디 거트리나 케루악의 작품들 속에서도 눈부
시게 번득이고 있다.
부상당한 몸으로 고향 콜드 마운틴으로 돌아온 인만의 여정은 미국판 오딧세이와도 같고 사
라져 버린 세상에 대한 슬픈 노래
나는 대지의 정신에 충실했던 전통적인 삶에 대해서 쓰고 싶었다. 그러나 그러기에는 과거와
나를 연결해 줄 어떤 연결고리가 필요했다. 무덤에 가보고 나서 얼마 지나지 않아 아버지가 내게
그런 고리를 선물로 주셨다.
그것은 나의 증조부에 대한 얘기였다. 인만이라는 이름을 가지 그분은 남군으로 참전했다가 탈
영하여 부상당한 몸을 이끌고 고향까지 걸어서 돌아왔다. 내게 인만의 여정은 미국판 오딧세이와
도 같은 것이며 사라져 버린 세상에 대한 슬픈 노래이다. 그래서 나는 5년 동안 그의 행적을 거
슬러 올라갔다. 그러나 그곳에는 무덤을 표시해 주는 아무런 흔적도 없었다. 그저 통나무 조각들
과 나뭇가지들, 낙엽들만이 어지럽게 뒹굴고 있을 뿐이었다.
만약 증조부가 아버지의 말대로 그곳에 묻혀 있다면 산 아래로 펼쳐진 피존 강과 강가의 체로
키 인디언 부락의 전경이 한눈에 들어왔을 것이다. 비록 카누가라고 불렸던 그 마을을 올려다보
고 있을 것이다. 나는 증조부에게 큰 빚을 졌다. 오직 그분의 명복을 빌 따름이다.
피드 구독하기:
글 (Atom)